업종별로 보면 조선업이 전체 고용자의 61.3%를 사내하청업체를 통한 근로자 조달로 가장 많았고, 이어 철강(43.7%), 기계·금속(19.7%), 전기·전자(14.1%), 자동차업(16.3%)의 순이었다.

실제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0년 사내하도급 활용 현황’에 따르면 30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 132만6천40명 가운데 사내하청업체 근로자는 32만5천932명으로 전체의 24.6%를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주요 기간산업을 중심으로 사내하청업체 근로자 활용이 광범위하게 이뤄지는 배경은 무엇일까.

기업 관계자들은 "(사내하청업체 근로자 활용은) 표면상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통해 기업 경쟁력을 제고한다는 것이지만, 내면을 들춰보면 까다로운 국내 노동관계법이 원인을 제공자입니다"고 입을 모은다.

이로 인해 노사관계가 경직됨에 따라 근로자의 작업장 배치전환 등 사용자의 인사권 행사마저도 힘든 상황에서 기업들은 부득이 사내하청업체 인력을 통해 고용의 유연성을 확보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현재 쟁점 사안인 하도급 근로자와 파견 근로자를 어떻게 구별짓느냐는 점이다.

노동 전문가들은 도급의 경우 수급인이 일의 완성 및 업무 처리를 위해 행하는 일체의 행위가 수급인 책임 하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수급인은 자신이 채용한 근로자에 대한 지휘명령권을 행사하되 이에 대한 모든 법률상의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반면 근로자 파견의 경우에는 사용관계와 고용관계가 분리되어 있으므로, 사용사업주는 자신과 직접 근로 계약관계를 맺지 않은 파견근로자에 대해서도 지휘명령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법원은 왜 원청업체의 도급 사용자성를 부정하는 판결을 내린 것일까.

대법원과 서울고법은 이번 판결에서 "작업지시권, 근무시간 결정권 등이 원청에 있으므로 도급으로 볼 수 없으며, 컨베이어 특성상 도급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또 "작업 특성상 직영과 혼재하며 실질적으로 원청에서 대부분의 작업지시 및 근무시간을 결정하기 때문에 사내협력업체는 독자적인 기술, 자본없이 원청의 시설, 부품 등을 이용하며 단순 노무만 제공한다"고 덧붙였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대법원의 경우 불법 파견에도 구(舊) 파견법상 고용의제 조항을 적용한 부분이다.

실제 원심은 불법 파견의 경우 고용의제 조항은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으나 대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사내협력업체 재직 2년 초과 근무시 고용의제 조항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재계는 "(대법원과 서울고법은) 컨베이어 작업 특성상 동시작업이 불가피한 업무형태를 간과하고 단순히 혼재 작업 형태에만 초점을 두어 판단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04년 노동계가 현대자동차의 파견법 위반 혐의 등을 이유로 노동부에 진정을 제기한 사건에서 대검찰청이 적법한 도급계약 관계로 파악하여 무혐의 처분을 내린 바 있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때문에 재계는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은 사실심인 1심, 2심의 전권으로서 상고법원도 이에 구속됨에도 불구하고, 고법에서 인정한 사실관계를 사실상 부정하는 결정을 내린 대법원의 판결은 소송법상의 일반원칙에 위배된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이번 판결은 지난 2006년 6월 23일 대법원이 동일한 사안에 대해 ’적법 도급’으로 인정했음에도 다른 주장이나 추가 증거제출이 없는 상황에서 ’불법파견’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특히 일반적으로 대법원이 기존 판결에 배치되는 결정을 내리려면 전원 합의체 판결을 거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소부(小部)에서 판결을 뒤집은 점은 법원조직법 제7조에 위배되는 사항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기업 경영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점에서 예민한 사안임은 분명하다.

우선 사내협력업체의 인력운영과 처우 등을 둘러싼 분쟁과 사내협력업체 근로자가 원청업체를 상대로 직접 고용을 주장하는 집단 기획소송이 빈번할 것이 예상되는 때문이다.

또 개별 기업들의 경우 잦은 법적 분쟁과 노사 분쟁 등의 혼란으로 인해 정상적인 경영에 큰 지장을 받을 우려가 높아 기업 경쟁력의 약화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외 경쟁업체들이 고용 유연성 확대를 통해 시장 변화에 대한 대응능력 및 비용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는 상황인 점을 감안하면 국내 기업의 타격이 불가피한 점도 있다.

국내 산업 및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비정규직(계약직, 파견직 등 정규직이 아닌 전체 비정규직)의 비중이 26.4%로 OECD국가 중 폴란드(29.9%), 스페인(29.4%)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상황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기업 및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주요 요인으로 부각되는 상황에서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더욱 강화되는 것은 자칫 기업 및 국가경쟁력 상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 재계의 입장이다.

실제 독일, 일본,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의 경우 노동유연성 확보를 위해 파견근로제를 폭넓게 허용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파견허용업종(32개) 제한, 파견사용 상한기간(2년) 설정, 불법파견시 직접고용 의무 부과 등의 제한을 두고 있다.

이는 결국 투자 및 고용시장의 냉각을 초래해 결과적으로 경제 전체의 성장성을 저해하며, 장기적으로는 서민경제 전반의 동력도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게 재계의 입장이다.

이로 인해 경제 전반이 투자 감소→생산 감소→고용 감소→소비 감소→투자 감소의 악순환 고리로 이어져 성장의 순환구조가 동맥경화를 보이면 정부의 일자리 창출과 친서민 정책에도 타격을 입게 될 수 있다는 것.

이같은 국내 노동시장의 경직 현상과 달리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외 주요 선진국들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강화해 기업 경쟁력과 경제활력을 높이는데 나서고 있다.

특히 자동차산업의 경우 세계적인 업체들은 짧아진 제품싸이클, 과잉 생산설비 등의 난관을 헤쳐나가기 위해 유연한 생산체제 구축을 통한 경쟁력 확보에 매진하고 있다.

고용의 유연성 확보가 경쟁력 확보의 최대 과제로 부각됨에 따라 유럽이나 일본, 미국 등의 선진 자동차업체들은 파견근로제를 폭넓게 활용함으로써 고용 유연성을 제고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조사한 독일 폭스바겐, 일본 도요타, 미국 빅3 자동차 회사의 ’노동유연성 확보 사례(2009년 10월 기준)’를 보면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 폭스바겐

독일 폭스바겐은 2000년부터 실업문제 해소를 위해 신규 입사자에 대해 낮은 임금을 적용하는 이중임금제를 도입한 것을 비롯해 ♦근로시간 유연화 ♦근로시간 계좌화 등을 실시해 노동 유연성에 나섰다.

여기에 발맞춰 정부는 노동관계 법령을 바꿔 제조업을 포함한 전 업종에 파견근로자를 허용하는 한편 2004년부터는 파견 근로자 사용기간도 종전 24개월이던 것에서 기한 자체를 폐지했다.

○ 도요타

일본 도요타도 정규직 수를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시장상황에 맞춰 기간공 또는 판견 근로자를 탄력적으로 투입하는 제도를 도입하고, 부서간 및 공장간 여유인력을 재배치하는 이른바 ’응원제도’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만들어 노동 유연성을 높였다.

2004년부터 일본 정부도 항만운송, 건설, 경비, 의료업을 제외한 전 업종에 대해 판견근로를 허용하는 한편 파견기간은 일반 파견(3년)을 제외한 26개 전문업무는 아예 기간을 철폐했다.

다만 기업이 파견근로의 상한기간을 초과할 경우 사용 사업주의 근로자 고용계약 신청을 의무화하고, 이를 위반할 시 지도, 조언, 권고 및 기업명단 발표 등으로 제재를 가하도록 규정했다.

○ 미국 빅3

포드, GM, 클라이슬러 등 미국 빅3 자동차 업체들은 경영난 타개 등을 위해 시장상황에 따라 근로자를 해고했다가 재취업을 우선적으로 보장하는 ’일시해고(Lay-off)제’를 도입해 노동 유연성을 강화했다.

미국의 경우 영국과 마찬가지로 파견근로와 관련해 연방법 차원에서는 제한규정이 없으며, 파견 허용업무 및 기간제한 규정도 노동관계 법령에서 정하고 있지 않다.

[재벌닷컴]